추모식은 날씨가 개는 것처럼 여러 단계로 끝난다. 친척들이 서울로 돌아갈 차에 몸을 싣고, 엔진 소리가 흙길 너머로 사라지고, 마당에서 아직 움직이는 것은 항아리 곁 향로 위로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뿐이다. 내 형수는 그 모든 일이 끝난 뒤, 함께 지내던 두 사람에게 지나치게 커져 버린 시골집의 고요 속에서 시작한다. 부엌 불만 마지막까지 켜져 있다. 식탁의 천 아래에는 미지근해진 전과 양념 나물, 두 손가락만 남은 소주병, 아무도 치우지 않은 잔 두 개가 놓여 있다.

형은 그릇을 다 씻기도 전에 떠났다. 서울에서 새벽 회의가 있다는 말은 저절로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문장이다. 내가 싱크대에 등을 돌린 그녀를 보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린다. 새벽 전 서울 도착. 하준을 재워. 하준, 바로 나다. 스물여섯인데 문자 한 통으로 재워지는 나이. 스물여덟인 형수는 소매를 걷은 채 서 있다. 의식 때 입은 흰 블라우스는 손목까지 젖어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리고, 검은 치마와 설거지물 외에는 손에 아무것도 없다. 그 복도에 서는 순간 이야기는 선명하게 갈라진다. 형수로 남는 남자와, 그 밤에 남는 남자로.

오로라

어디보다 북쪽인 한밤중, 하늘이 대부분의 일을 해낸다. 유리 이글루 위로 초록 불꽃이 펼쳐진다. 기혼 야간 호스트 은별은 전기담요 리모컨을 내려놓지 않고, 천장은 보지 마라는 말은 이쪽을 보라는 가장 공손한 표현이다. 눈 덮인 산책로로 나가면 밤은 그저 잠으로 끝난다. 오로라는 온돌처럼 낮고 느리게 아래에서 온기를 쌓는다.

박스석

2막은 수상할 만큼 오래 인터미션 중이다. 오페라 극장의 측면 박스석에서 기혼 관객 선우는 특별히 볼 것 없는 곳에 자수정 오페라글라스를 든 채 말한다. 막을 내리지 마. 벨벳 복도 문까지는 세 걸음이고, 밖으로 나가면 저녁은 평범한 3막이 된다. 박스석은 극장 박스와 잠긴 안쪽 방이 망설임이라는 같은 건축으로 이루어졌음을 안다.

텅 빈 일요일

여섯 편 중 가장 조용하다. 형은 지방에 가 있고, 형수는 혼자 들기 힘든 배달을 받아 달라고 한다. 남은 찌개도 있어…라는 말은 환대일 수도, 알리바이일 수도, 같은 앞치마를 두른 둘 다일 수도 있다. 상자를 내려놓고 돌아가면 하루는 가족의 날로 남는다. 텅 빈 일요일은 오늘 밤 복도의 한낮 쌍둥이로, 같은 문턱에 숨을 곳만 더 적다.

친구의 아내

초대가 끝나기도 전에 침실 문은 반쯤 열려 있고, 가운은 한쪽 어깨에서 벗겨져 있으며, 커피는 답이 뻔한 질문처럼 건네진다. 그이는 집에도 없어… 커피 마시러 들어와. 지나가며 문을 다시 닫으면 그곳은 법적으로도 영원히 친구의 집이다. 친구의 아내는 진눈깨비와 그럴듯함으로 굴러가며, 반쯤 열린 문이 방 안에서 가장 솔직한 인물임을 안다.

남쪽 문

나라를 바꾸고 걸쇠는 그대로 둔다. 텍사스 목장에서 기혼 여성이 직접 나와 남쪽 문을 연다. 별채 에어컨이 고장 났고 본채는 선택지로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다. 객실에서 자면 밤은 방문일 뿐이다. 화자의 모든 갈등이 한 필지 경계에 압축된다. 남쪽 문은 같은 긴장을 복도 대신 넓은 목장에 펼치고,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크게 들려온다.

마지막 트랙

그리고 다시 박물관이다. 폐관 뒤, 마지막 한국어 도슨트 녹음 위에 부스 조명 하나만 남아 있다. 기혼 성우는 전시 태블릿을 내려놓지 않으며 말한다. 남은 건 전시관 목소리뿐이야. 창고 문으로 나가면 밤은 그저 정리 작업이 된다. 마지막 트랙은 울려도 되는 것이 결심뿐인 방음실 안에서 이 목록을 끝낸다.


위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 끝내 손에서 놓지 않는 물건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걸쇠, 리모컨, 커튼, 찌개, 커피포트, 문, 태블릿. NTR 비주얼 노벨은 그 물건을 얼마나 정직하게 무대에 올리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유혹은 다른 무엇보다 경첩과 따뜻한 바닥에 먼저 스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쥐고 있고 어느 방이 열기를 품는가. 이 목록의 처음에 나온 열린 문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마지막 트랙: 전체 이야기에서 녹음등이 켜져 있다.